오늘의 지수
  • 코스피 5668.04 113.82+2.05%
  • 코스닥 794.77 33.95+4.46%
  • 달러 1,330.00 14.6-1.1%
  • 유로 1,497.38 9.92-0.66%
  • 엔화 842.25 9.06-1.08%
  • 위안 198.93 2.07-1.04%

서울대 '무늬만 법인화' 15년의 경고…국립대의 '사립대화(化)'는 해법 아냐

  • 2011년 3월 법인으로 재출범…정부 규제·감사 그대로인데 교원 신분만 불안정, '통합예산 편성권' 없는 반쪽짜리 자율

  • 정원·인사 유연성 등 순기능 불구…정부 재정 예속에 갇힌 미완의 독립

  • '고등교육법 제5조'·'산학협력법' 등 촘촘한 상위법 규제와 간선제 거버넌스 한계…OECD 중 국립대 직접 관장 비효율 지적도

  • 국립대 자율성·경쟁력 강화 위해 '책임운영기관제 도입·블록재정 운영' 검토…'고등교육법 제5조' 손질 필요, 포괄적 자율권도 선행돼야

사진김준환 기자
지난 2011년 출범한 서울대 법인화 15년의 성적표를 두고 학내 평가는 엇갈린다. 법인화위원회 출범 당시 서울대 법인화의 목표는 자율적인 대학 운영 및 개혁과 지속 가능한 재정 기반 구축이었다. [사진=김준환 기자]
국립대학을 공기업이나 사립대학처럼 독립 법인으로 전환해 자율성을 보장하고 글로벌 경쟁력을 끌어올리겠다는 ‘국립대 법인화’ 구상이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그러나 국립대의 사립대화(化)가 몰고 올 파장은 단순한 지배구조 개편에 그치지 않는다. 공공성과 기초학문 보호라는 국립대 본연의 헌법적 책무를 훼손하고, 정부의 재정 지원 책임을 대학과 학생·학부모에게 전가해 고등교육의 공공 기반 자체를 무너뜨릴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이에 <아주경제>는 고등교육계가 직면한 현안 중 하나이자 정부가 추진 중인 ‘국립대 법인화’와 관련해 ‘국립대학법인 서울대학교’의 지난 14년 운영 궤적을 돌아보고, 현장의 명암과 제도적 선제 과제를 짚어봤다.
유연성 확보된 정원·인사 vs 거버넌스 후퇴와 신분 불안 ‘명암’
16일 <아주경제> 취재를 종합하면, 지난 2011년 출범한 서울대 법인화 15년의 성적표를 두고 학내 평가는 엇갈린다. 우선 제도적 유연성과 책임 행정이 안착됐다는 점은 법인화의 대표적 순기능으로 꼽힌다.

보직 교수를 지냈던 A씨는 “과거 국립대 시절에는 행정안전부의 엄격한 공무원 총정원 규제를 받아 서울대병원 임상교수 등 현장에 꼭 필요한 전문 인력조차 정규 전임교수로 전환하기 어려웠다”며 “법인화 이후 국가 정원 통제에서 벗어나 우수한 의료·연구 인력을 대학 자체 정원으로 대거 흡수할 수 있었던 것은 법인화가 아니었으면 불가능했던 변화”라고 짚었다. 총장의 인사권 독립으로 교육부 순환보직 관행에서 벗어나 전문 행정 인력을 안정적으로 확보한 점 역시 긍정적 평가를 받는다. 보직을 역임한 교수 B씨는 “정년 보장과 서울 근무의 이점, 교육부 대비 유연한 근무 환경 덕분에 채용 시 최우수 인재들의 지원이 늘며 행정의 질적 도약이 이뤄졌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 같은 외형적 인사 유연성 이면에는 ‘거버넌스 후퇴’와 ‘교원 신분 불안’이라는 짙은 그늘이 드리워져 있다. 거점국립대들이 총장 직선제를 복원하며 민주적 정통성을 강화한 것과 달리, 서울대는 이사회가 총장을 최종 낙점하는 간선제 틀에 갇혀 구성원들의 자율적 의사결정권이 제약받고 있다는 비판이 꾸준하다.

교원의 지위 역시 불안정해졌다. 공무원 신분을 상실하고 사립학교교직원연금(사학연금) 체제로 편입되면서 직업적 안정성에 균열이 생겼다. 익명을 요구한 서울대 관계자는 “근속연수를 고려할 때 사학연금의 실제 수령액이 공무원연금에 뒤지지 않고, 대학이 자체적으로 보수체계를 유연화해 성과급이나 연봉을 책정할 수 있는 법적 기반이 마련된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반면 임정묵 서울대 교수회 회장은 “사학연금 고갈 우려 속에서 신진 교원들이 체감하는 박탈감은 상당하며, 실제 급여나 복지 처우 개선은 피부에 와닿지 않았다”며 “국제 순위 상승이나 연구비 증액 역시 개별 교수들의 연구 역량과 R&D 수주 결실일 뿐, 법인화 체제의 혜택으로 보기는 어렵다”고 선을 그었다.
‘출연금 7000억’ 외형 팽창에도 재정 종속 심화…‘반쪽짜리 자율’
​​​​​​​재정과 회계 운용 부문에서도 ‘자율권 확보’라는 당초 취지는 무색해졌다. 외형상 재정 규모는 크게 불어났다. 서울대의 전체 법인회계 예산(약 1조 2000억 원) 중 정부 출연금은 법인화 초기 약 3500억 원대에서 2026년 현재 7000억 원을 돌파하며 15년 새 두 배 가까이 팽창했다.

그러나 덩치가 커진 만큼 정부 재정 의존도 역시 동반 상승하는 역설을 낳았다. 수익 사업을 통해 독자적인 재정 기반을 구축하려 해도 ‘산학협력법’ 등 촘촘한 상위법 규제와 지분 매각 의무, 세제 제약 탓에 자립적 수익 모델 창출은 원천 봉쇄돼 있다.

예산 집행의 자율성도 사실상 명목에 불과하다. 정부는 총액(통합) 예산을 지원한다고 홍보하지만, 실상은 국립대 시절과 다름없이 세부 비목(목·세목)을 일일이 쪼개 교육부와 기획재정부의 사전 승인을 받아야 한다. 막대한 국민 세금이 투입되는 구조인 만큼 감사원과 국회의 현미경 감사가 상시화돼 있고, 운영비를 인건비로 전용하거나 우수 교원에게 파격적인 인센티브를 차등 지급하는 자율적 예산 집행권은 작동하지 않는다.

임정묵 회장은 “교육부는 서울대 법인화를 성공 사례로 포장해 타 국립대 확산의 레퍼런스로 삼으려 하지만, 학내 다수 교수들이 체감하는 온도는 정반대”라며 “법인화 당시 공언했던 자율성과 재정 자립은 실종되고 오히려 정부 통제만 고착화된 ‘실패한 모델’에 가깝다”고 단언했다.
“OECD 유일의 직접 관장 벗어나야”…‘책임운영기관제’는 실질적 대안
​​​​​​​이처럼 법인화에 대한 학내 평가가 엇갈리는 가운데, 고등교육 거버넌스 개편의 해법을 다른 각도에서 찾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설득력을 얻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주요국 중 정부가 국립대를 중앙행정기구의 하부 조직처럼 세세하게 직접 관장하는 국가는 극히 드물며, 이러한 관료주의적 관리가 국립대의 경쟁력 정체를 부른 구조적 원인이라는 분석이다.

국립대 거버넌스 제도 연구에 정통한 한 고등교육 정책 전문가는 “국립대의 글로벌 경쟁력을 끌어올리기 위해서는 대학이 스스로 책임을 지고 특성화 전략을 펼 수 있도록 실질적 자율성을 대폭 이양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최근 거론되는 ‘책임운영기관제’와 관련해 “일각에서는 ‘책임운영기관제가 결국 사립대식 법인화로 가기 위한 사전 단계 아니냐’는 의구심을 갖지만 이는 오해”라며 “이 정책의 본질은 교직원 신분 불안과 공공성 훼손을 초래하는 법인화와는 결을 달리하며, 현 국립대 틀 안에서 운영·재정 자율권을 실질적으로 보장하려는 제도적 대안”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대학에 포괄적으로 예산을 배정(블록재정)하되, 총장이 자율적으로 정한 발전 목표와 성과를 토대로 사후 평가하는 체계가 도입돼야 한다”며 “특히 국립대의 공공적 가치를 지키기 위해 취업률 같은 획일적 정량 지표에서 벗어나 인문·순수과학 등 기초학문 육성 책무를 별도로 특화 평가하고, 총장 직선제 등 학내 민주적 의사결정 구조를 온전히 보장하는 설계가 전제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고등교육법 제5조’ 족쇄 풀고 특수법인 맞춤형 법률 제정 선행돼야
​​​​​​​결국 문제의 본질은 ‘법인화냐 아니냐’라는 형식적 간판 바꾸기에 있지 않다. 대학을 옭아맨 정부의 획일적 통제 시스템을 걷어내고, 실질적 자율을 뒷받침할 법·제도적 인프라를 마련하는 것이 핵심이다.

서울대조차 온전한 자율을 누리지 못하는 배경에는 정부 예산 지원 체계의 태생적 한계가 자리한다. 서울대 사정에 밝은 교육계 관계자는 “정부가 대학 예산의 절대다수를 지원하는 회계 시스템 아래에서는 공무원이 집행 책임을 지기 위해 사전 규제와 사후 감사를 강화할 수밖에 없다”며 “미국 유수 대학처럼 등록금·기부금·기술료 수익 등을 통한 독자적 재정 자립 기반이 없는 상태에서 정부 돈에 전적으로 의존한다면 어떠한 법인도 진정한 자율을 획득하기 어렵다”고 진단했다. 

그는 “과거 KAIST나 KIST 설립 당시 파격적인 특례를 부여해 정부 간섭을 최소화했던 것처럼, 국가 연구개발과 고등교육의 특수성을 인정하는 ‘특수법률적 결단’이 선행되지 않는다면 어떤 개편도 공염불에 그칠 것”이라고 경고했다.

가장 시급한 과제로는 법인화 대학조차 묶어두고 있는 ‘고등교육법 제5조’(학교는 교육부장관의 지도·감독을 받는다)의 포괄적 규제 조항을 정비하는 일이다. 이 조항 탓에 법인화 이후에도 학과 정원, 인사, 세부 예산 집행에 이르기까지 교육부의 개입이 이어지고 있으며, 국립대의 자율성을 포괄적으로 보장하는 독립 법률조차 부재한 실정이다.

임정묵 회장은 “수도권의 인프라와 강력한 동문 네트워크를 갖춘 서울대조차 상위법 규제에 묶여 수익 사업 하나 제대로 펼치지 못하는데, 재정 여건이 열악한 지역거점국립대에 무작정 법인화를 요구하는 것은 고등교육 포기 선언이나 다름없다”며 “교육부의 일방적 지도·감독권을 내려놓고 포괄적 블록재정과 교원 신분 보장, 실질적 자율성을 법제화하는 선결 조건이 반드시 충족돼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전문가들 역시 사립대 모방형 법인화 추진을 멈추고, 국립대학의 공공적 책무와 정부의 안정적 재정 지원 의무, 대학의 자율 운영권을 함께 명문화하는 ‘국립대학법(가칭)’ 제정이 우선이라고 강조한다. 정부가 쥔 사전 통제와 예산 쪼개기 감사를 내려놓고 대학에 권한과 책임을 동시에 부여하는 입법적 결단 없이는, 어떠한 거버넌스 개편도 ‘무늬만 자율’이라는 15년 전 서울대의 전철을 되풀이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