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우디, 우라늄 농축·재처리 영구 포기 안 해…UAE와 대조
2년 공동 검토 뒤 농축 가능성 열어둬…IAEA 추가의정서도 빠져
빈 살만 "이란 핵무장하면 우리도"…중동 핵 경쟁 확산 우려
사우디, 농축·재처리 포기 안 해…UAE와 다른 길
23일 로이터통신과 월스트리트저널(WSJ) 등에 따르면 크리스 라이트 미국 에너지장관과 압둘아지즈 빈 살만 사우디 에너지장관은 전날 미국 원자력법 123조에 따른 민간 원자력 협력 협정과 별도 양자 안전조치 협정에 서명했다.
논란의 핵심은 사우디가 우라늄 농축과 사용후 핵연료 재처리를 영구적으로 포기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우라늄 농축은 원전 연료를 만드는 데 쓰이는 기술이지만 농축도를 크게 높이면 핵무기용 핵물질 생산에도 활용할 수 있다. 원전에서 사용한 핵연료를 재처리해 플루토늄을 추출하는 기술 역시 핵무기 개발에 이용될 수 있다.
이는 아랍에미리트(UAE)가 2009년 미국과 체결한 원자력 협정과 차이가 있다. UAE는 당시 자국에서 우라늄을 농축하거나 사용후 핵연료를 재처리하지 않겠다고 약속하는 이른바 ‘골드 스탠더드’를 받아들였다. 사우디는 미국과의 오랜 협상 과정에서 이 같은 조건을 거부해왔다.
다만 이번 협정이 사우디의 독자적인 우라늄 농축을 당장 허용하는 것은 아니다. WSJ에 따르면 미국과 사우디는 앞으로 2년간 사우디 내 우라늄 농축 필요성과 사업성을 공동으로 검토한다. 농축을 추진하기로 결정하면 미국 기업이 현지에 시설을 건설하되 핵심 기술은 사우디 측에 공개하지 않는 이른바 ‘블랙박스’ 방식이 적용될 수 있다.
미국이 공동 연구 후 농축에 동의하지 않으면 사우디는 향후 10년간 자체적으로 또는 다른 국가와 협력해 농축에 나설 수 없는 것으로 전해졌다.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강화된 사찰을 받도록 하는 ‘추가의정서’도 이번 협정에는 포함되지 않았다. 사우디는 핵확산금지조약(NPT)에 따라 IAEA의 기본적인 감시와 사찰은 받고 있지만 추가의정서는 체결하지 않고 있다. 추가의정서를 체결하면 IAEA가 신고되지 않은 핵 활동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더 폭넓은 정보와 시설에 접근할 수 있다.
이란엔 농축 포기 요구하면서…미국 ‘이중잣대’ 논란
이번 협정은 미국의 대이란 정책과 정면으로 대비된다는 점에서 논란을 키우고 있다. 미국은 이란의 핵무기 개발 가능성을 차단한다는 이유로 자체 우라늄 농축 포기를 요구해왔다. 미군은 22일에도 이란군 표적을 상대로 추가 공습에 나서 12일째 공습을 이어갔다.
트럼프 행정부는 그동안 “이란이 평화적인 원자력 발전만을 원한다면 필요한 핵연료를 해외에서 수입하면 된다”며 “자체 농축을 고집할 이유가 없다”고 주장해왔다. 그러나 사우디에는 향후 자국에서 우라늄을 농축할 가능성을 열어뒀다.
이번 협정이 중동 내 핵 개발 경쟁을 촉진할 것이란 관측도 있다.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 왕세자는 지난 2018년 “이란이 핵무기를 개발하면 사우디도 뒤따르겠다”고 밝힌 전력이 있어 이러한 우려를 더 키우고 있다.
미국 정치권에서는 즉각 반발이 나왔다. 에드 마키 민주당 상원의원은 “이번 협정이 중동의 핵무기 경쟁을 촉발할 수 있다”며 “무책임하고 위험하다”고 비판했다.
미국 정부는 “자국이 직접 사우디 핵 프로그램에 참여해 관련 시설을 관리하는 것이 중국이나 러시아가 사업을 맡는 것보다 핵 확산 위험을 줄일 수 있다”며 반박했다.
협정 추진 배경으로는 경제·전략적 이익이 거론된다. 미국 원전기업들은 수백억 달러 규모로 예상되는 사우디 원전 사업을 수주하는 데 유리한 위치를 확보할 수 있다. 미국은 동시에 중국과 러시아가 중동 원전 시장에서 영향력을 확대하는 것도 견제할 수 있다.
이번 협정은 앞으로 미 의회 심사를 거쳐야 한다. 의회가 협정을 저지하려면 상·하원 합동 결의안을 통과시켜야 한다. 트럼프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고 이를 무력화하려면 상·하원에서 각각 3분의 2 이상의 찬성표가 필요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