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니 루피아 사상 최저권, 경상적자·자본유출 겹쳐
무상급식까지 줄인 인니, 재정 신뢰도 흔들
韓 상황은 좀 더 낫다지만... 유동성 과잉 경계해야
인도네시아 루피아화가 사상 최저권으로 밀리면서 아시아 외환시장에 다시 위기론이 번지고 있다. 경상수지 적자와 외국인 자금 이탈, 재정 신뢰 약화, 통화량 증가가 한꺼번에 맞물리며 통화 신뢰가 흔들리는 모습이다.
대규모 경상수지 흑자와 충분한 외환보유액을 갖고 있는 한국에 인도네시아의 사례를 직접 대입하긴 어렵지만, 원화 약세와 통화량 증가, 구조적 달러 수요가 동시에 나타나고 있는 만큼 인도네시아 사례를 주시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루피아 1만8000선 돌파…되살아난 위기론
루피아화는 지난달 달러당 1만8000루피아를 넘어서며 사상 최저권으로 떨어졌다. 6월 30일에도 달러당 1만7900루피아 안팎에서 거래되며 약세 흐름을 이어갔다.
표면적으로는 달러 강세가 배경이다. 그러나 루피아화의 약세가 금융위기의 전조로 여겨지는 이유는 따로 있다.
인도네시아 증시에서는 올해 들어 외국인 자금 이탈이 이어지고 있다. 로이터에 따르면 외국인은 2026년 들어 인도네시아 주식을 약 38억9000만 달러 순매도했고, 자카르타종합지수는 한때 30% 가까이 하락했다. 경상수지도 올해 1분기 40억1000만 달러 적자를 기록해 2019년 4분기 이후 가장 큰 적자 폭을 보였다.
여기에 프라보워 수비안토 대통령의 핵심 공약인 335조 루피아, 한화 기준 약 29조 원 규모의 무상 영양급식 프로그램이 재정 부담을 키웠다. 당국이 황급히 예산을 268조 루피아로 줄인 데 이어 추가로 약 40조 루피아를 삭감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지만, 여진은 계속되고 있다.
MSCI 지수 문제도 부담이다. MSCI는 인도네시아의 신흥시장 지위 검토를 11월까지 연장했다. 시장 접근성 개선이 충분하지 않다고 판단되면 신흥시장에서 프런티어시장으로 내려갈 수 있다는 우려가 남아 있다.
현재 상황을 1997~98년 아시아 외환위기의 재연으로 단정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통화 약세가 자본유출, 재정 불안, 외환보유액 방어력에 대한 의문과 동시에 나타나고 있다는 점에서 경계감은 커지고 있다.
경상적자에 외국인 이탈 겹쳐
첫 번째 취약 고리는 경상수지다. 인도네시아 중앙은행에 따르면 인도네시아는 올해 1분기 40억 달러의 경상수지 적자를 기록했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1.09% 적자다.
경상수지 적자가 곧 위기를 뜻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적자가 지속되면 외부 자금 유입에 대한 의존도는 높아질 수밖에 없다.
문제는 바로 그 외부 자금이 흔들리고 있다는 점이다. 외국인 매도가 이어지면 주식시장 약세가 심해지고, 달러 수요도 커진다. 이는 다시 루피아화 약세 압력으로 이어진다.
하나증권 김근아 신흥국 전략 연구원은 6월 26일 보고서에서 MSCI의 인도네시아 지위 검토 연장으로 강등 리스크가 여전히 남아 있다고 분석했다. 외국인 투자자들이 시장 접근성 개선 조치의 실제 이행 여부를 확인하기 전까지 관망할 가능성이 높다는 설명이다.
인도네시아의 외환보유액은 5월 말 1449억 달러로 전달보다 13억 달러 줄었다. 올해 1월부터 5개월 연속 감소세를 이어갔다. 중앙은행은 이 규모가 수입 5.6개월분, 정부 외채 상환을 포함해도 5.5개월분에 해당한다고 밝혔다.
국제 표준이라 할 수 있는 수입 3개월분을 웃돌고 있긴 하지만, 환율 방어가 길어질 경우에는 감소세가 예상보다 빨라질 수 있는 상황이다.
금리 올리고 무상급식 예산도 삭감한 인니
현물환시장과 파생상품시장에서의 개입도 강화했다. 외국인 포트폴리오 자금 유입을 유도하기 위해 루피아화 표시 증권의 금리 구조도 조정했다.
재정도 압박을 받고 있다.
한국무역협회 자카르타지부는 루피아화 약세의 배경으로 정부 재정 규율과 정책 신뢰에 대한 우려를 꼽았다. 프라보워 정부의 무상급식, 보조금, 사회지출 확대가 국채 발행과 차입 증가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면서 인도네시아 금융자산 전반에 위험 프리미엄이 붙고 있다는 분석이다.
실제로 인도네시아 정부는 6월 22일부터 7월 13일까지 이어지는 방학 기간 무상급식을 완전히 중단한 상태다. 인도네시아 국가영양청을 비롯한 관계부처는 앞으로도 학기 중에만 무상급식을 제공할 방침이다.
정부는 올해 관련 예산을 약 40조 루피아 줄이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아직 프로그램을 폐지한 것은 아니지만, 루피아화 약세와 재정 부담이 정치적으로 중요한 지출 계획까지 제약하기 시작한 것이다.
인도네시아가 당장 외환위기에 빠졌다고 보기는 어렵다. 외환보유액은 아직 국제 금융권에서 요구하는 최소 기준을 웃돌고, 물가도 통제 범위에 있다. 중앙은행도 금리와 시장 개입을 모두 동원하고 있다.
그러나 현재의 양상은 약한 통화, 경상수지 적자, 외국인 자금 이탈, 재정 신뢰 우려가 동시에 나타나는 '신흥국 스트레스'의 전형을 보이고 있다. 인도네시아 경제가 위기에 빠져 있다는 경고가 나오는 이유다.
韓 원화 약세는 달러 수급 문제, 직접 비교는 어려워
한국 역시 원화 약세에 신음하고 있다.
6월 30일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40년 만에 가장 큰 약세를 보인 엔화와의 동조화 현상 등으로 인해 전 거래일보다 4.2원 오른 1549.4원에 마감했다. 장중 한때에는 16거래일 만에 1550원선을 넘어서기도 했다.
6월 월평균 원·달러 환율은 1,526.59원으로 외환위기 당시인 1998년 1월 1,701.5원, 2월 1,626.8원에 이어 역대 세 번째로 높았다.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인 2009년 3월 월평균 환율 1,461.98원보다도 높은 수준이다.
강달러 환경에서 약세를 보인다는 점에서 원화와 루피아화는 유사한 측면이 있다. 그러나 한국의 경우 달러가 유출되는 인도네시아와 달리 외화를 벌어들이는 구조가 꾸준히 유지되고 있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관세청에 따르면 한국의 6월 무역수지는 361억 달러 흑자를 기록, 사상 최초로 300억 달러 고지를 돌파했다. 반도체 수출 회복과 상품수지 개선이 흑자를 이끌었다.
외환보유액도 5월 말 4269억9000만 달러로 인도네시아의 약 세 배 수준이다. 외환보유액만 놓고 보면 한국이 단기간에 외화 부족 위기로 몰릴 가능성은 제한적이다.
舊 M2 10%대는 부담... 유동성 과잉 경계해야
다만 한국이 인도네시아를 반면교사 삼아야 할 이유가 전혀 없진 않다. 두 국가 모두 통화량 증가 속도가 주요국 대비 가파른 속도를 유지하고 있어서다.
한국은행의 현행 M2 기준으로 4월 광의통화 증가율은 전년 동월 대비 5.7%였다. 그러나 수익증권을 포함한 구(舊) M2 기준으로 보면 증가율은 10.3%에 달했다.
이는 인도네시아의 통화량 증가세와 유사하거나 더 가파른 수준이다. 인도네시아의 연간 M2 증가율은 4월 9.2%, 5월 10.8%를 기록했다. 통화량 확대와 재정 지출 우려, 자본유출이 맞물리면서 루피아화에 대한 시장의 신뢰가 흔들렸던 인도네시아와 유사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같은 기간 미국의 M2 증가율은 4월 약 4.7%, 5월 약 5.6%였고, 일본은 2%대 중반에 그쳤다. 러시아가 4월 12.3%, 5월 13%로 한국이나 인도네시아보다 높았지만, 이는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한 전시 재정정책이 반영된 특수 사례에 가깝다.
환율이 금융위기 수준에 근접한 상황에서 과잉 유동성이 달러 수요를 키운다면, 원화의 신뢰도 흔들릴 수 있다. 루피아화의 추락을 반면교사 삼아야 하는 이유다.
